― 숭례문학당 <독서토론 심화과정>을 마치며 ―
“바다는 들어갈수록 깊어진다.”
2023년 11월, 독서토론 심화과정을 수료하며 소감 발표 때 했던 말입니다.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읽은 어느 책에서 건져낸 이 한 문장이 제 마음에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4월에 입문과정을 시작으로 6~7월 리더과정을 마칠 때까지만 해도, 독서토론은 그저 즐거운 취미 활동으로 여겼습니다. 리더과정을 수료할 때에는 이제 제법 논제를 만들 줄 알게 됐다는 생각에 우쭐하기도 했습니다. 심화과정 8주를 거치는 동안 내면에 자라났던 자만심은 어느새 겸손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심화과정은 제게 독서라는 세계의 깊이와 독서토론 진행자가 갖춰야 할 높은 수준에 대해 일깨워줬습니다.
심화과정을 수강하면서 여러 능력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 ‘좋은 논제’를 볼 줄 아는 능력입니다. 독서토론 진행자는 ‘좋은 논제’를 만들 줄 알아야 하는데, 리더과정에서 논제의 틀을 갖추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면 심화과정에서는 양질의 논제를 작성하는 실력이 조금은 향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좋은’ 논제에 대한 생각도 바로잡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저자가 강조하려는 부분 또는 책에서 가장 집중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제가 더 멋진 논제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고 할까요. 이젠 그보다 토론 패널들이 활발하게 토론할 수 있는 내용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알게 됐습니다. 책으로만 파고들던 제 시야가 책의 외부로 넓어진 느낌입니다.
둘째, 독서 편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 졸업 직후부터 내내 직장 생활을 해 오면서 자연스레 독서 습관도 자기계발 또는 사회과학 분야로만 치우치게 됐는데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소설을 읽을 때 시간 낭비한다는 생각까지 들게 됐습니다. 하지만 심화과정까지 토론을 기반으로 한 독서를 지속하면서 소설의 가치를 다시금 발견했습니다. 김민영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실패한 인생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매체는 소설”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앞만 보고 달렸던 제 인생이 이제 조금은 위, 아래, 옆, 뒤를 모두 살펴보면서 느리지만 넓고 깊어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셋째, 학생 때부터 독서를 즐겼지만 숭례문학당을 만나기 전에는 그저 ‘혼자 하는 독서’가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책 한 권을 읽어내는 것도 점점 버겁고 재미도 줄어들었습니다. 독서의 목표는 오로지 ‘다독’일 뿐 방향도 의미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독서토론이라는 ‘함께 하는 독서’ 방법을 찾게 되어 너무나 행복합니다. 사람만 만날 때는 왠지 모를 헛헛함이 있었는데 혼자 읽고 같이 토론한 책 한 권이 저를 꽉 채우는 느낌에 중독되듯 빠져들고 있습니다.
저는 실제로도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숭례문학당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가 바로 그런 상태였죠. 지금도 여전히 물을 무서워하지만 물을 이용해 바다 속으로 조금씩 깊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논제가 잘못 되어도 좌절하지 마라”, “계속 틀려도 반복해서 또 하면 된다”는 김민영 선생님의 말씀은 매 시간 저를 북돋는 응원이자 채찍이었습니다. 힘든 시점마다 페이스 메이커처럼 활기를 불어넣어 주신 허유진 조교님이 계셔서 든든했습니다. 제가 허우적거리면 손 내밀어주고 조금 늦으면 기다려주는 동료 분들이 없었다면 끝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심화과정을 마치며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 다시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갈 각오를 다져봅니다. 이전보다 더 무섭고 두렵지만 전에 보지 못했던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2023년 가을, 어느 해보다 가장 치열하게 독서하고 정성을 들여 논제를 고민한 독서의 계절로 기억될 것입니다. (함께 보기)
글ㆍ조미란 / 서울 강동구청 홍보기획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