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화 / 숭례문학당 <식물의 재발견-1일 1식물일기> 강사
삶은 가끔 견뎌냄입니다. 그냥 살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끔 반갑지 않은 몇 가지가 찾아와서 삶을 견뎌내게 만듭니다.
그 첫 번째는 '욕심'입니다. 기존의 약속들을 취소하지 않고, 읽을 책도 쌓아두고, 또 공부 욕심을 냅니다. 가끔은 오지랖을 부려서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합니다. 그러면 피곤이 크게 작게 쌓여갑니다.
두 번째는 ‘관계에서 만만한 사람으로 보이기’. 모임의 어색함과 침묵을 못 견뎌서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할 때, 자신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많이 할 때 만만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럼 단기간이나 장기간에 꼭 상처를 받게 됩니다.
세 번째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에 계속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그게 사람과의 관계라는 지극히 사적인 것일 수도 있고, 공원의 불필요한 공사로 몇 년씩 보던 나무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공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에 계속 마음을 쓰면 두통이 찾아오고 소화 기능도 저하됩니다.
네 번째는 앞의 세 조건을 알면서도 ‘무시하기’. 몸과 마음에 켜켜이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무시하고 직진 본능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겁니다. 버티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면서요. 그러다 어느 순간 몸이나 마음에서 뭔가 뚝 끊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단계까지 가면 회복 속도가 너무 오래 걸리거나 회복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기 치유가 중요합니다.
자, 그럼 오랜 단련 끝에 알아낸 비법을 공개합니다.
우선, '사람에게 목숨 걸지 말기'. 그런 모임들이 있습니다. 모임에 빠졌더니 다음 모임에서 나만 소외되는 느낌.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고, 나도 그들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항상 이걸 잊으면 안 됩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소중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을 하찮게 여기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지요.
두 번째, '플래너 써 보기'. '바쁘다 바뻐'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것이 플래너입니다. 내가 할일 적어보기. 그렇게 적어보면 의외로 할일들이 많지 않습니다. 다만 머리에 엉켜 있어서 많아 보일 뿐.
세 번째는 ‘침묵의 세계를 이해하기’. 침묵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사람들 성향이 다르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혹 경험하지 못했던 침묵의 시간을 일부러라도 만들어 보세요. 만남에서 말하고 싶을 때 꾹꾹 참으면서 경청하기. 그런 시간들이 모이다 보면 사람들의 말소리가 너무 크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옵니다. 상대적으로 나도 그랬다는 생각도 하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차츰 침묵을 배워갑니다. 더 이상 침묵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네 번째는 ‘빨리 털어내기’. 사적인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불편하다면 당분간 그 사람과 거리를 두면 됩니다. 그 사람이 불편하다고 '너랑은 끝이야'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잠시 거리를 두고 지내다 보면 관계가 좋아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인연은 거기까지인 겁니다. 공원 공사로 아끼던 나무가 베어졌다면 시청에 민원을 제기하거나 바라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공사 현장에 가서 큰 대자로 누울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매의 눈으로 지켜볼 생각입니다. 남아 있는 나무들은 지켜줘야 하니까요.
앞의 네 가지 방법이 효과가 없을 때를 위한 특급 처방이 있습니다. 집을 나서 보세요. 침대에 누워 죽은 나무처럼 있고 싶더라도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 보세요. 눈앞에 연두와 초록 세상이 너무 차지 않은 바람과 함께 반겨줄 겁니다. 잠시 걸어주세요. 그러다 벤치가 보이면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핸드폰 금지! 핸드폰은 잠시 넣어주셔도 좋습니다. 딱 10분만 멍하니 앉아 있어 보세요.
은행나무가 조금씩 자라는 소리가 들릴지도 모릅니다. 어디선가 조금 이른 아까시나무 꽃향기가 바람에 날려 올 거예요. 고개를 돌려보면 이 계절 보랏빛 꽃을 피우는 등꽃과 흡착판으로 벽을 꼭 붙잡고 새잎을 키우는 담쟁이덩굴도 보게 될 겁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카페 테이블에서 마트리카리아를 보고 웃음 짓게 될 거예요.
삶을 한 발 더 내딛게 하는 건 이런 사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 속에 살아가지만 식물들에게 위로 받으며 나아가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 함께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