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신주의 장자수업》 함께 읽기를 마치며 ―
7주간에 걸친 《강신주의 장자수업》 읽기를 모두 마칩니다. 감히 대장정이었다고 말합니다. 48편의 이야기를 하루 두 편씩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 장자가 오늘날 재부상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국가와 자본에 의한 예속화가 날로 심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자는 국가주의와 인류 문명의 이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꿰뚫어 본 선지자였습니다. <장자> 우화가 들려주는 고고한 자유의 메시지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 저는 책을 읽는 내내 장자 이야기를 제 삶의 현실과 연관 지어 생각하고 음미하려 노력했습니다. 장자의 옛 이야기가 지금 제 삶에 어떤 구체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점점 명료하게 다가온 한 문장이 있습니다. 이 문장을 매개로 장자 철학의 핵심을 제 방식으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여물위춘(與物爲春). “타자와 함께 봄(春)이 되어야 한다.” 저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덕충부’ 편에 나오는 이 문장에 장자 철학의 핵심이 잘 녹아 있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늘 봄과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봄은 온화한데다가 생성의 기운을 안겨줍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자연의 봄과 달리 우리 삶의 봄은 결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되어야 한다”는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타자와 함께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봄입니다. 중요한 건 그것을 만드는 주체가 ‘나’라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는 타자와 함께 봄의 세상을 만들며 살 수 있을까요?
장자는 못생겨도 너무 못생긴 추남 애태타 이야기를 그 예로 들려줍니다. 이상하게도 이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왔다하면 떠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처가 되기보다 이 사람의 첩이 되겠다는 젊은 여자들이 줄을 섭니다. 도대체 그에게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요. 그는 자기주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비교하지 않았으며 편견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언제나 단독자로서의 타자가 있었을 뿐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기쁨을 주는 타자와 함께 있는 사람 애태타. 그는 그렇게 ‘여물위춘’의 무릉도원을 만들었습니다. (전체보기)